[단독] 10년 전 문서에서 확인된 “APR1400 설계, 웨스팅하우스 기술 기반” (2025)

[단독] 10년 전 문서에서 확인된 “APR1400 설계, 웨스팅하우스 기술 기반” (1)

체코 원전 사업에 걸렸던 비밀의 빗장이 풀리자 후폭풍이 거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체코 원전 사업은 윤석열 정부와 당시 여당이 내세운 최대 치적이었다. 지난해 7월18일 체코 원전 수주 결과를 발표하며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대어 낚았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찬했고, 국민의힘은 ‘잭팟’ ‘쾌거’라며 거리 곳곳에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다.

당시 야당 일부에서 미국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WEC)와의 지식재산권(로열티) 이슈 등을 문제 삼았지만 국가적 경사라는 대의 앞에 비교적 조용히 묻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체코 정부에 사업비를 조달해주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내용이 밝혀져 논란이 됐지만, 산업부는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시 정책금융 제공 의향 제시는 당연한 관례”라고 반박하면서 넘어갔다. 윤석열은 지난해 9월 체코를 방문하고 돌아와 “정치권 일각에서 체코 원전 사업 참여를 두고, ‘덤핑이다, 적자 수주다’ 하며 근거 없는 낭설을 펴고 있다”라고 말했다.

체코 원전 수주 발표로부터 1년 남짓 지난 8월19일 충격적 내용이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가 체코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WEC와 심각한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고 〈서울경제〉가 보도했다. WEC와의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일절 공개되지 않고 있던 계약의 세부 사항이 드러난 것이다.

WEC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 1월 맺은 ‘타협 협정서’에 따르면 한수원은 한국형 원전을 수출할 때 원전 1기당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원)어치의 물품 및 용역 구매 계약을 WEC 측에 제공하고,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2기를 수주했으니 2조원을 훨씬 넘는 금액이다.

협정 내용이 알려지자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체코 원전 사업의 실체가 ‘노예 계약’ ‘매국 행위’였다며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괴담’으로 매도한 체코 원전 수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국정조사와 감사원 감사 청구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라고 밝혔고, 조국혁신당도 정부 차원의 철저한 감사·수사를 촉구했다. 대통령실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 체코 원전 사업은 ‘노예 계약’일까

‘노예 계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번 협정서의 유효기간이 50년이기 때문이다. 특허 존속기간이 통상 2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50년이라는 기간은 과도하다. 특히 기존 원전은 물론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차세대 원자력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해외 수출을 하려면 WEC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미래의 원전 산업에 족쇄가 채워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라늄을 정제해 만드는 원전 연료도 WEC가 공급한다. 체코·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100%, 그 외 지역은 50%의 원전 연료를 WEC가 공급한다. 한국의 경우 한전 자회사인 한전원자력연료 등이 국내외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데, 공개된 합의서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원전 기술 수출 가능 지역을 체코와 중동·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로 제한하는 조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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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졌지만 산업부나 한수원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8월19일 국회에서 “계약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 역시 “저희가 감내하고도 이익을 남길 만하다”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원전 1기당 1조1400억원(물품 및 용역계약+기술사용료)에 달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쨌거나 이익이 남는 만큼 해볼 만한 사업 아니냐는 주장이다. 체코 원전 사업비는 1기당 약 13조원이다.

문제는 지난 정부와 한수원이 그동안 원전에 대한 ‘기술 자립’ 또는 ‘독자 기술’을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첫해인 2022년 12월14일 산업부는 경북 울진군 신한울 1호기 준공식 브리핑을 통해 “차세대 한국형 원전인 APR1400 노형이 적용된 신한울 1호기는 그간 미자립 영역으로 남아 있던 원자로냉각재펌프(RCP),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등의 핵심 기자재를 국산화한 최초의 원전”이라며 기술 자립을 이뤄냈다고 밝혔다. 이후 신한울 원전에 적용된 독자 기술이 체코 원전 수주의 발판이 됐다는 유의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비밀계약 내용이 알려진 직후인 8월19일, 국회에 출석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기술 자립을 했는데) 한국이 왜 로열티를 줘야 하느냐”라는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애초부터 100% 우리 기술이라고 주장한 바 없다. 원자력계 일부에서 100% 우리 기술로 확보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는 발언을 했지만, 상업적으로 들어가면 결국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구조였다. 오해가 생기게 했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한수원 사장이 우리에게 원천기술이 없으니 로열티 등 대가를 줘야 한다고 명백히 인정한 셈이었다. 그런데 한수원이 기술 자립을 선언했다고 ‘오해’하게끔 한 건 윤석열 정부 때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3월에도 한수원은 ‘원전설계코드 인허가 취득으로 핵심 기술 완전 자립’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모든 원전 핵심 기술을 보유하게 되어 해외 수출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다. 당시 한수원 사장은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지낸 이관섭씨였다.

■ 한수원과 WEC의 인연과 악연

WEC와 한국의 관계는 박정희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국내 첫 번째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건설할 때부터 한국은 WEC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처음 갈등이 불거진 건 2009년 한국의 첫 원전 수출 사례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때였다. 당시 WEC가 지식재산권 침해를 주장했는데, 한국이 WEC에서 기자재를 구매하기로 하면서 갈등을 해결했다.

분쟁이 본격화한 건 2022년 10월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의 원전 수출 움직임이 본격화한 시점이다. WEC는 미국 법원에, 한수원이 체코 등 해외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이 WEC의 원천기술을 적용해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는 수출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은 수출을 추진하는 APR1400은 독자 기술이므로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이 아니라고 맞받았다. 한수원은 대한상사중재원에 ‘APR1400에는 WEC의 기술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정해달라’는 중재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가 ‘대어 낚았다’라며 체코 원전 수주를 발표했을 때도 분쟁은 진행 중이었다.

양측의 분쟁은 2025년 1월에야 마무리됐다. 1월16일 한수원·한전·WEC는 지식재산권 분쟁 절차를 중단하고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비공개였는데, 당시 이미 한수원 측이 상당한 로열티를 약속했으리라는 추측이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그 내용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그런데 한수원 등 원전 업계가 한국형 원전 APR1400이 WEC의 원천기술에 기반했다는 점을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정황을 시사하는 자료가 확인됐다. 〈시사IN〉이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APR1400 설계 인증 취득 관련 문서(‘Licensing support and consulting service for APR1400 design certification application to the US nrc’)다. 한수원, 한전, WEC 등이 참여해 2012년에 작성된 이 문서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APR1400의 설계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수원은 설계 인증 취득에 성공하면 한국형 원전의 해외사업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고, 2019년 APR1400 원전이 NRC로부터 설계 인증을 취득했다고 발표했다. 주목할 것은 이 문서의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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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1400 설계는 한수원(KHNP)을 비롯한 한국 기관들이 개발한 가압수형 원전 설계를 의미하며, 출력은 약 1400MWe이며, 웨스팅하우스가 소유한 System 80+ 기술을 기반으로 하거나 이를 포함하고 있다(APR1400 design means a pressurized water reactor nuclear power plant design developed by KHNP, along with other Korean entities, having a power output of approximately 1400 MWe and which is derived from, based on, and/or incorporates System 80+ technology owned by Westinghouse).”

여기서 ‘System 80+’ 기술은 WEC가 소유한원전설계 기술을 말한다. 즉 APR1400이 WEC의 기술에 기반했음을 한수원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해주는 문서다. 2022년 WEC가 미국 법원에 한국형 원전이 WEC의 원천기술을 적용했다고 주장한 근거가 여기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한규 의원은 “한수원이 WEC와의 지식재산권 문제가 원전 수출에 걸림돌이 될 걸 진작부터 알았으면서도, 윤석열 정부 시책에 발맞추느라 무리하게 체코 원전 수주에 나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수원 측은 해당 문서에 대해 “미국 내 인허가를 위해서 미국 기술이 포함된 노형으로 DC(설계 인증)를 진행했다”라고 알려왔다. 한수원 관계자는 또 “WEC와의 불평등 계약 논란에 대한 한수원의 공식 입장은 ‘없음’이다. 비밀유지 협약에 따라 확인이 불가하다”라고 밝혔다.

■ 윤석열의 정치 참여와 원전

돌이켜보면 윤석열은 ‘원전이 만든 정치인’이었다.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사퇴한 배경에 월성원전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월성원전 사건은 문재인 정부가 월성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이 감사 및 수사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충돌했다.

윤석열은 2021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직후 맨 처음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현 원자력연구원장)를 만났다. 윤석열은 이 자리에서 “검찰총장을 관둔 것이 월성원전 사건 처리와 직접 관련이 있고, 정치에 참여한 계기 역시 월성원전 사건 및 탈원전과 무관하지 않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주 교수는 윤석열 후보 대선캠프에서 원자력 및 에너지 정책분과장을 맡으면서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불평등 계약 논란으로 곤경에 처한 원전 업계는 한·미 정상회담에 사활을 걸었다. 한수원 등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을 방문해 ‘원전 하이브리드 단지’ 건설 사업에 참여하는 업무협약(MOU)을 발표하는 등 미국 원전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WEC와의 합작회사(조인트벤처) 설립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WEC와의 불평등 계약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무리하게 합작회사 설립에 나선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원전 업계는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8월27일 합작회사 설립이 미국 현지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WEC 측이 원전 건설 과정에서 공사가 늦어지거나 해 비용이 늘어나면 한국 측이 책임을 지게끔 하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한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굴욕 합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수원 측이 또 다른 무리수를 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와 원자력 업계가 체코 원전 수주의 전말을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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